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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교육 초록색 별이 된 빈터 - 권영상 작가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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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파트 앞 길 건너에 카페가 들어온다는 말이 돌았다. 나는 반신반의했다. 카페가 들어오기엔 공간이 너무 크다. 옥상이 있는 빨간 벽돌 단층 건물과 그 건물의 다섯 배는 되고도 남을 담장으로 둘러쳐진 빈터, 그 빈터를 보고 ‘정기화물’이 들어와 있었다.

정기화물은 운송화물을 분류하고 옮겨 싣는 재래식 사업이라 약간 번잡했다. 어떻든 그만한 사업체가 들어와 일할 만큼 공간이 컸다.

어느 날인가, 그 빙 둘러친 담장 대문에 누군가가 노랑과 보라 페인트를 칠하고 있었다. ‘유치원이 들어오려나 보네’ 나는 그랬다.

기다랗고 멋없는 담벼락도 기둥마다 청색으로 칠해졌다. 좀 유치한 듯했지만 우선 시각적으로 산뜻했다. 그런 며칠 뒤 2층 옥상으로 올라가는 철제 계단이 만들어지더니 계단 역시 노란색으로 칠해졌다. ‘유치원이 맞구만!’ 나는 아내에게 말했다. ‘어떤 카펜지 몰라도 카페라 했어.’ 아내도 창밖을 내다보며 고개를 갸웃했다.

어떻든 이 경직된 도시에서 피어나는 그 노랗고 파란 색상만으로도 이사 온다는 카페는 우리의 관심을 끌기에 충분했다.

그리고 또 며칠 지났다.
이번에는 그 넓은 빈터에 녹색 나무들이 가득 들어찼다. 대나무들이었다. 10여 미터는 족히 넘을 녹색 대나무들이 담장 안을 빙 둘러 가며 촘촘히 심어졌다. 갑자기 빈터가 초록숲이 되었다. 우리는 틈만 나면 창밖을 내려다봤다. 우리 집이 4층이고 보면 그 숲이 되어버린 빈터가 황홀한 녹색별처럼 한눈에 보였다.

정말 카페일까. 저만한 공간을 가질 수 있는 카페라면 다국적 체인점 카페는 물론 아니다. 내가 보아온 그 어떤 유치원도 저렇게 시작할 수는 없었다.

며칠 뒤였다. 이번에는 그 단층 건물의 하얀 옥상이 초록 잔디로 변해 있었다. 영화의 화면이 바뀌는 것처럼 자고 나면 빈터가 색깔 있는 풍경으로 바뀌었다. 마치 이 메마른 도시가 수많은 별들 중의 녹색별로 변해가는 느낌이었다.

크리스마스가 한 달쯤 남아있을 때다. 대나무 숲속에 크리스마스트리가 세워졌고, 밤이면 밤하늘 별들처럼 불이 반짝였다. 그 얼마 뒤 말로만 듣던 카페가 정말 들어왔다. 의외였다. 카페라면 붐비는 길목을 빼앗아 뻔한 실내장식으로 영업을 개시하는 게 보통 아닌가.

어쨌든 이 이면 도로변에 선 카페에 사람들이 조용히 붐비기 시작했다.
그리고 오늘이다. 아침부터 대나무 숲과 이층 녹색 옥상이 북적였다. 한눈에 보기에도 바자가 열리고 있었다. 더는 거기를 건너다보고만 있을 수 없었다. 나는 아파트를 나와 그 집 그 노란 대문 안으로 성큼 들어섰다. 스머프와 심슨 가족과 배트맨이 요기조기 숨어있는 대숲을 한 바퀴 빙 돌아 그 붉은 벽돌 건물의 유리 문을 밀고 들어섰다.

무척 아늑한 카페였다.
조용히 커피를 마시고 노란 계단을 따라 올랐다. 붉은 벽돌마다 새앙쥐 그림이 새겨져 있었다.
그들을 따라 올라간 녹색 옥상 위에서 나는 그림책 바자와 인형과 장난감 바자를 만났다. 순이익을 불우이웃에 전한다는 그 바자의 중심에 그 카페가 있었다.

수많은 책 중에 나는 핀란드 작가가 그린 그림책 ‘세상에서 가장 작은 젖소’와 크리스티네 벤트의 ‘지나의 모자’를 샀다. 그리고 나를 위한 인형 ‘뭉치’도 샀다. 나는 녹색별에 놓인 의자에 앉아 그림책을 한 장 한 장 다 읽고 가뿐한 마음으로 녹색이 되어 돌아왔다. 내가 마치 세상에서 가장 작은 녹색 국가에 입국했다가 방금 출국한 기분이다.

Pixabay로부터 입수된 fancycrave1님의 이미지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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