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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 마지막 교실 - 한희철 목사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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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연한 일을 계기로 오래전에 썼던 동화를 다시 읽게 되었습니다. 최근에 책을 통해 만나게 된 한 어르신이 계십니다. 어느 날 그분은 그리운 마음으로 지하철을 갈아타는 불편을 마다하고 정릉을 찾아오셨고, 반가운 대화 끝에 헤어질 때 책 몇 권을 전해드렸습니다. 인터넷으로 책을 구하는 것이 쉽지 않다고 하셨거든요.

그렇게 전해드린 책 중의 한 권이 동화집 <네가 치는 거미줄은>이었습니다. 얼마쯤 시간이 지났을 때 그분은 책을 읽은 소감을 남겨 주었습니다. ‘나도 천국 갈 때 다시는 못 볼 이곳을 깨끗이 청소하고 가겠습니다. 뿐만 아니라 나를 힘들게 했던 사람들을 용서하겠습니다. 나는 청소하고, 목욕하고, 용서하고 기다리겠습니다. 나를 데리러 오는 천사를 기다리겠습니다.’

이렇게도 고맙게 책을 읽는 분이 계시구나 싶어 마음이 뭉클했습니다. 덕분에 나도 그분이 읽고 글을 남긴 ‘마지막 교실’을 다시 읽었고, 어르신이 새기셨던 다짐을 다시 새길 수가 있었습니다.

강원도 감천면 화성 초등학교가 마지막 날을 맞았습니다. 새로 생긴 횡성 댐 때문에 온 동네가 물에 잠기게 되었고, 덩달아 학교도 문을 닫게 된 것입니다. 동네와 넓은 들이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마을 뒷동산 널따란 바위 위 '화성정'이란 정자도, '화성정에서 본 정외팔경'이란 액자도, 액자 속에 담긴 여덟 가지 아름다운 경치도, 임진왜란 때 전사한 남편의 시신을 전라도까지 찾아가 수습하여 선산에 묻고 평생을 묘지기로 지낸 김 씨 부인을 기리는 포동리 '열녀각'도 모두 물에 잠기게 되고 말았습니다.

연단에 선 교장 선생님도, 앞줄에 선 세 명의 선생님도, 연단 앞에 쪼르르 줄 맞춰 선 스무여 명의 학생들도 마지막으로 교가를 부르다 참았던 울음이 터져버린 마지막 조회를 마치고 교실로 들어온 5-6학년 학생들은, 아직 선생님이 오지도 않았는데 전에 없이 조용했습니다. 여느 때 같았으면 이리 뛰고 저리 뛰고 체육시간 운동장 같았을 교실에 아이들은 제각기 자기 자리에 앉아 누구도 움직이지 않았습니다.

머리카락 한 올이 떨어져도 그 소리가 크게 들렸을 것 같은 교실의 조용함을 깬 건 대석이였습니다. 개구쟁이 대석이가 교실 뒷문을 열고 밖으로 나가더니 깨끗하게 빤 걸레를 들고 들어왔습니다. 그러고는 천천히 교탁을 닦기 시작했습니다. 교탁을 다 닦은 대석이가 창문 쪽 맨 앞자리, 미리 전학을 가 비어 있던 미경이 책상을 닦기 시작했을 때 아이들은 하나 둘 일어났습니다. 아이들은 걸레며 비를 찾아 교실 구석구석을 청소하기 시작했습니다. 유리창이 그렇게 깨끗한 적은 전에는 없었을 것입니다.

마지막 인사를 나누기 위해 교실로 들어서던 선생님의 발걸음이 그만 문 앞에서 멈춰 섰고, 청소를 하고 있던 아이들과 눈이 마주쳤습니다. 교실 문은 한동안 열려지지 않았습니다. 교실 문을 사이에 두고 두 눈이 모두 젖은 아이들과 선생님이 서로를 마주 본 채 다음 일을 아예 잊고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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