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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의 바다, 인류의 혈압을 바꾸다: 해녀의 유전자가 주는 의학의 열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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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한의 바닷속에서 건져올린 생존의 유전자, 그리고 그것이 가져올 의학의 미래




섭씨 10도. 숨을 참은 채 수심 18미터까지 하강. 맨몸.


이 모든 조건은 오늘날의 잠수 장비를 갖춘 과학자에게도 쉽지 않은 환경이다. 하지만 제주 해녀들은 수세대에 걸쳐 이를 당연하게 받아들이며 살아왔다. 


그들은 미역, 성게, 전복을 캐기 위해 찬 바다에 몸을 던지고, 임신 중에도 잠수했고, 출산 후 며칠 만에 다시 바다로 돌아갔다.


이 놀라운 생존력의 근원에 유전적 진화가 있었다는 사실이 밝혀지고 있다. 그리고 그 유전자는 이제, 전 세계 수억 명이 고통받는 고혈압과 뇌졸중 같은 만성 질환 치료의 단서를 제공하고 있다.



바다에서 진화한 생존 전략


미국 유타대학교 생의학정보학 조교수 멜리사 일라르도(Melissa Ilardo)가 이끄는 국제 연구팀은 최근 학술지 Cell Reports제주 해녀의 유전적 적응에 관한 연구를 발표했다. 


핵심은, 제주 사람들—특히 해녀들—에게서 발견된 특정 유전자 변이잠수 중 급격한 혈압 상승을 억제한다는 것이다.


이 유전자는 평소에는 조용히 있다가, 잠수처럼 산소가 부족한 상황에서만 작동한다. 산소가 줄어들면, 우리 몸은 주요 장기를 보호하기 위해 혈관을 수축시켜 혈압을 올린다. 이는 생존에 도움이 되지만, 반복되면 뇌졸중 같은 질환을 일으킬 수 있다. 그런데 제주 해녀들은 이 위험을 유전자 수준에서 통제하는 법을 터득한 것이다.


일라르도 교수는 “숨을 참는 동안 생명을 지키기 위한 반응이, 장기적으로는 건강을 위협할 수도 있다. 제주 사람들의 유전자는 이 균형을 잡는 방법을 진화시켰다”고 설명했다.



두 가지 적응, 하나의 진화


연구는 두 갈래로 진행됐다. 첫째는 제주 전체 인구가 공유하는 유전적 적응이다. 연구팀은 약 1,200년 전, 이 유전자가 자연 선택에 의해 퍼지기 시작했을 것으로 추정했다. 


예컨대, 임신한 여성 두 명이 잠수를 했고, 유전자가 없는 쪽은 임신중독증으로 사망했지만, 유전자를 지닌 여성은 생존하며 후세를 남겼다는 시나리오다.


둘째는 해녀 개개인의 생리적 적응이다. 반복된 훈련을 통해, 해녀들은 잠수 시 심박수를 평범한 여성보다 두 배 이상 느리게 유지하는 능력을 갖추게 된다. 연구진은 실제 바다 대신 찬물 대야에 얼굴을 담그고 숨을 참는 ‘모의 잠수 실험’을 통해 이를 입증했다.



왜 해녀는 모두 여성일까?


흥미롭게도, 전 세계 잠수 문화를 살펴보면 남녀가 함께 물질을 하던 곳도 적지 않다. 그런데 제주에서는 어느 순간부터 여성만 바다에 들어갔다. 이유는 명확하지 않지만, 일라르도 교수는 이를 문화적 진화의 일환으로 본다. 


가부장적 구조 속에서 남성은 생계 유지를 위한 농업이나 어업에 집중하고, 여성은 공동체 식량 확보를 위해 바다로 나섰을 가능성이 있다.


오늘날 활동하는 해녀들의 평균 연령은 60대에서 80대에 이른다. 일라르도 교수는 “87세의 해녀가 정박하지 않은 배에서 바다로 뛰어드는 모습을 보며 말문이 막혔다”고 회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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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전자는 어디까지 영향을 미칠까?


제주 해녀의 유전자는 혈압 반응 조절 외에도 ‘냉기 내성’과 관련된 가능성을 보여준다. 연구팀은 ‘사르코글리칸 제타(Sarcoglycan Zeta)’라는 유전자의 변이를 주목했다. 


이는 통증과 냉기 인내력에 영향을 미치며, 얼음물에 손을 넣고 버티는 테스트를 통해 입증된 바 있다.


또한, 이 유전자가 제주 지역의 낮은 뇌졸중 사망률과도 관련이 있을 수 있다는 가능성이 제기된다. 한국의 뇌졸중 사망률은 10만 명당 평균 32명 수준이지만, 제주는 24명에 불과하다. 이는 미국의 평균(37명)보다도 낮다.



바자우족, 티베트인, 그리고 해녀


이번 연구는 극한 환경에 적응한 인류 집단을 연구해 질병 치료의 단서를 찾는 ‘진화 의학’의 대표 사례로 꼽힌다. 인도네시아의 바자우(Bajau)는 더 큰 지라를 지녀 산소 저장 능력이 탁월하며, 티베트인은 고산지대의 희박한 산소에 적응한 유전자 변이를 지니고 있다.


또 다른 사례로, 프랑스 가족을 연구해 발견된 유전 변이가 콜레스테롤 수치를 낮추는 PCSK9 억제제 개발로 이어진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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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 건강의 미래, 조용한 공동체에서 온다”


진화생물학자 벤 트럼블(Ben Trumble)은 “의자에 앉아 사는 현대인이 아닌, 환경과 싸우며 살아온 사람들을 연구하면 우리가 ‘노화’라고 여겨온 질환들이 사실은 자연 선택의 방향성과 어긋난 생활 방식 때문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고 말했다.


서울대 이주영 박사와 협업해 현장 조사를 이끈 일라르도 교수는 이제 해녀의 유전자를 “질병 예방과 치료를 위한 바이오 마커”로 삼을 수 있기를 희망한다. 물론 이를 위한 연구는 이제 시작 단계다.


하지만 확실한 것은 하나다.


바닷속 생존을 위한 진화가, 땅 위의 수많은 생명을 구할지도 모른다는 것.



밴쿠버교차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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