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교육 [K-Gen 人터뷰] 이민자의 터전 위에 세운 정직한 손길, 그 이름 '마스터 오토바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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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8년, 한국이 IMF라는 커다란 경제적 폭풍에 휩싸였을 때, 한 남자는 갓 태어난 딸과 이제 겨우 걸음마를 떼기 시작한 아들의 미래를 품고 밴쿠버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당시 29세였던 이창호 씨는 가진 것 없는 이민자의 현실 앞에서 오직 ‘가족’이라는 이유 하나로 낯선 땅을 선택했다. 그렇게 시작된 그의 밴쿠버 이야기.
27년이 지난 지금, 그가 일군 ‘마스터 오토바디(Master Auto Body)’는 단순한 자동차 수리점을 넘어 ‘가족이 함께 일구는 따뜻한 기적의 공간’이 되었다.
“처음에는 두려움뿐이었죠”
밴쿠버에 도착하자마자 그들을 기다리고 있던 건, 새로운 희망보다는 더 큰 불안감이었다.
언어 장벽, 생계의 위기, 그리고 무엇보다 막막한 미래. 하지만 이창호 씨는 ‘자신만의 길’을 찾기 위해 스스로를 “제로로 리셋”하겠다는 결심을 굳게 다졌다.
“그땐 그냥 내가 뭔가를 새로 배워야겠다고 생각했어요. 오래 할 수 있고, 기술로 승부하는 일.”
자동차 오토바디라는 생소한 분야에 눈을 돌린 그는 당시 전혀 관련 경험이 없었지만, 오히려 그것이 그를 더 간절하게 만들었다. Human Resource 사무실의 구인 광고를 따라 무작정 찾아간 오토바디 샾에서 "경험 없는 사람은 안 뽑는다"는 문전박대를 당했지만, 오히려 그날이 인생의 방향을 바꾸는 전환점이 되었다.
“그래, 그럼 내가 경험을 만들어보자.”
그는 곧바로 Automotive Training Center에 등록해 4개월간 집중 교육을 받았다. 그리고 마침내, 처음으로 밴쿠버의 한 바디 샵에 취업하면서 그의 긴 여정이 시작됐다.
“고객의 차를 내 가족의 차처럼”
처음 5년은 오직 ‘배움’의 시간이었다. 그는 ICBC의 보험 시스템, 부품 유통의 복잡한 경로, 고객의 차를 ‘완벽히 복원’하기 위한 기술적 노하우를 밤낮없이 익혀나갔다.
그렇게 밴쿠버에 정착한 지 꼭 5년이 되는 2003년, 그는 드디어 첫 번째 오토바디 샵을 인수하게 된다. 그곳이 바로 지금의 ‘마스터 오토바디’.
“제가 젊었으니까요. 낡은 시설이었지만 아침 7시 30분부터 저녁 6시까지 성실하게 운영했어요. 고객들이 믿어주셨죠.”
그리고 그 믿음은 입소문이 되어 퍼졌고, 그의 샵은 ‘망가진 차도 이창호 사장 손만 거치면 새 차처럼 돌아온다’는 명성을 얻게 됐다.
랭리에서 다시 피어난 가족의 꿈
17년간 델타에서 마스터 오토바디를 운영하던 그는, 고객들의 주거지가 랭리로 이동하는 변화에 주목했다. 그러나 바디샵이라는 업종 특성상, 시청의 허가를 받는 건 하늘의 별 따기. 포기하지 않고 매주 아내와 함께 랭리 지역을 돌아다닌 끝에, 2024년 초 마침내 그들이 원하던 장소가 매물로 나왔다.
“렌트비고 뭐고 따질 겨를도 없었어요. 무조건 인수했습니다.”
새 샵은 5,000 SF. 마치 소형 공장 같은 규모로, 보는 이들의 감탄을 자아내는 공간. 하지만 무엇보다 놀라운 건, 그 안에서 함께 일하는 사람들이다. 바로 이창호 씨의 가족이다.
아버지, 아들, 딸, 그리고 엄마… 네 가족의 협업
막내아들은 23살, 아버지의 손을 따라 3년 전부터 함께 차를 고치기 시작했다. 아버지처럼 ‘고객의 차를 내 차처럼’ 다루는 섬세함을 갖췄다는 아들은 이제 아버지의 오른팔로 자리 잡았다.
“사람 쓰는 게 제일 어려워요. 그래서 가족이 같이 하는 게 제일 든든하죠.”
둘째 딸은 SFU에서 교육학을 전공했지만, 교사의 길 대신 아버지의 비즈니스를 선택했다. 지금은 어카운팅과 부품 주문 등 행정 업무를 도맡고 있다.
리셉션에는 아내와 딸이, 샵에서는 아버지와 아들이. 모두가 각자의 자리에서 ‘마스터 오토바디’라는 하나의 꿈을 지켜나가고 있다.
“문을 여는 시간엔 하루의 각오도 함께 열립니다”
밴쿠버의 아침 공기가 아직 차가운 시간, Master Autobody의 작업장 문은 누구보다 먼저 열려 있다. 문을 여는 이는 바로 이곳의 주인장이자, 27년 이민의 시간을 묵묵히 걸어온 이창호 사장. 시계 바늘이 아침 6시를 가리키기도 전, 그는 이미 샾에 도착해 있다.
“7시 반에 샾은 열지만, 저는 늘 그보다 일찍 도착해요. 청소도 하고, 공기도 바꾸고… 제 마음도 한 번 더 정리합니다.”
기자가 묻자, 그는 부드럽지만 단단한 어조로 말했다.
고객보다 먼저 하루를 시작하는 이유, 거기엔 그의 오랜 철학이 깃들어 있다.
“직장 다니는 분들은 출근 전에 차를 맡기고 싶어 하시고요. 또 퇴근길에 바로 찾을 수 있어야죠.”
그의 샾은 토요일도 문을 연다.
일하는 고객의 입장에서 설계된 영업 시간이다.
요즘처럼 인건비도, 운영비도 상승하는 시대에 이처럼 넉넉한 영업시간을 유지하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하지만 이창호 사장은 “가족이 함께 일하니 가능하다”고 말했다.
그의 가족들은 모두 Master Autobody의 일원이다. 아들은 직접 차량 복원 작업에 참여하고, 딸은 회계와 부품 주문, 아내는 리셉션을 맡는다.
모두가 주인처럼 움직이는 진짜 가족 비즈니스이기에 가능한 배려 중심의 구조.
“우리는 일찍 열고, 늦게 닫아요. 고객이 차를 맡길 수 있는 시간은, 곧 우리의 책임이니까요.”
이창호 사장이 활짝 연 정비소의 문은 단지 차를 위한 문이 아니다.
그건 하루를, 고객을, 그리고 자신의 소명을 향해 여는 책임과 정성의 문이다
2세대가 잇는 가족의 꿈
이창호 씨는 겸손하게 말한다. “아들하고 3년 같이 일했는데 아직 싸운 적 없어요. 왜냐고요? 제가 참으니까요.” 그리고는 너털웃음을 터뜨린다.
하지만 기자는 안다. 그 웃음 속엔 수십 년 간 지켜온 가족과 신뢰, 그리고 책임이 녹아 있다는 걸.
이창호 가족의 마스터 오토바디. 그것은 단지 자동차를 고치는 곳이 아니다. 망가진 차를 다시 달리게 하듯, 낯선 땅에서의 삶을 ‘복구’하고, 가족이라는 이름으로 ‘완성’해가는 기적의 공장이다.
그리고 그곳의 마스터는, 오늘도 아침 6시에 출근해 환한 마음으로 샵의 문을 연다.
밴쿠버교차로
Master Autobody
19257 Enterprise Way #1, Surrey, BC
(604)585-37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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