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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교육 [내가 지켜본 카나다 교육] 작은 졸업식, 큰 감동 — 캐나다에서 만난 교육의 진심-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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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여름, 큰처남 가족이 처음으로 밴쿠버를 찾았다.
당시 초등학교 3학년과 1학년이던 두 아들과 함께, 온 가족이 함께한 첫 해외 여행이었다. 총각 시절 몇 차례 밴쿠버를 방문했던 처남에게도, 가족과 함께하는 이번 여행은 남달랐다.


공항에 도착 하자마자 우리는 로키 여행부터 보냈다. 여행사에 맡겼지만, 그 이후로는 내가 직접 운전대를 잡았다. 휘슬러를 포함해 밴쿠버 곳곳을 안내하며 최선을 다해 이들을 대접했다.


차 안은 북적였다. 우리 부부와 처남네 가족까지 여섯 식구가 함께 타니 여유가 없었다. 휘슬러로 향하는 길, 어린 조카 둘은 시끄럽게 떠들며 차를 뒤흔들었다. 


나는 속으로 기대했다. '이제 처남이 조용히 시키겠지.' 하지만 처남 부부는 아이들에게 한두 번 부드럽게 주의를 줄 뿐이었다.


만약 우리 아이들 이었더라면? 아마 버럭 소리를 지르며 버르장머리를 고쳤을 것이다. 순간, 나도 모르게 짜증이 올라왔다. 하지만 이를 꾹 눌렀다. 괜히 얼굴에 불편한 기색을 보였다가는 가족 간에 상처만 남을 터였다.


휘슬러 여행을 무사히 마친 후에도 나는 여러 번 생각했다. '아이들을 저렇게 키워선 안 된다.'
예전에 한국식당에서 아이들이 마구 뛰어다녀도 부모들이 제지하지 않는 모습을 보며 느꼈던 답답함이, 현실이 되어 눈앞에 펼쳐진 것이다.


밴쿠버에서 본 캐나다 교육의 진짜 가치


처남 가족은 약 3주 동안 밴쿠버에 머물렀다. 캐나다에서 아이들을 교육시키고 싶다는 꿈도 함께 품고 있었다.
당시 처남은 한국의 유명 글로벌 기업에 다니고 있었고, 처남댁도 대학에서 영문학을 전공해 영어 강의를 하고 있었다. 언어 문제는 이들에게 큰 장벽이 아니었다.


나는 진심을 담아 조언했다."아이들은 초등학교 6학년 이전에 와야 해. 그래야 학교에서 인성과 사회성을 제대로 배울 수 있어."


캐나다 초등학교는 아카데믹보다 '사회 속에서 살아가는 법'을 먼저 가르친다. 아이들은 뛰어놀며 질서와 에티켓을 배우고, 남을 배려하는 마음을 자연스럽게 익힌다.


그 과정은 가정에서는 가르치기 어려운 소중한 교육이다.나는 경험으로 알았다. 고등학교로 올라가면 인성 교육에 할애할 시간이 없다. 모두가 대학 입시를 향해 달려가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초등학교 시절이 무엇보다 소중하다.



축구장에서 배운 작은 감동


어느 토요일, 나는 막내아들의 주말 축구 리그 경기에 처남 가족을 데려갔다. 아들 팀은 강팀을 만나 경기 초반부터 6:0으로 크게 밀리고 있었다.


경기장을 바라보던 나는 특이한 장면을 목격했다. 아이들 중 몇몇이 한 손을 번쩍 들고 있었던 것이다.


'왜 한 손을 들고 있지?'


곧 깨달았다. "코치님, 저 힘들어요. 교체해주세요." 애타는 사인이었다.

나는 웃으며 처남에게 말했다. "한국 같았으면 부모들이 코치에게 선물을 주고라도 우리 아이 플레이 타임 늘려달라고 했을 텐데... 여긴 다르지? 힘들면 스스로 교체를 요청해."


처남도 고개를 끄덕이며 인상 깊게 바라봤다.그리고 나는 축구 클럽의 운영 방식도 설명해주었다.

"여긴 학부형 회장이 없어. '팀맘(Team Mom)'이라는 학부모가 자발적으로 경기장 섭외와 코치와의 소통을 맡아. 모두 봉사야."

나는 팀맘들의 헌신에 늘 감동했다. 조용히, 묵묵히, 자신을 드러내지 않고 아이들을 위해 헌신하는 모습. 진정한 리더십이 무엇인지를 보여주는 사람들이었다.



나는 한인 커뮤니티의 문화도 떠올렸다. 밴쿠버에도 수많은 한인 단체가 있지만, 새로운 모임이 생기면 으레 회장, 총무를 뽑는다.


공식 협회라면 당연한 일이지만, 단순한 취미 모임에도 직함을 만드는 건 어색하게 느껴졌다. 하지만, 그것 또한 하나의 문화였다.


처남 가족은 이 짧은 3주 동안 많은 것을 보고 느꼈다. 결국, 캐나다에서 아이들을 키우기로 결심했고, 3년 뒤 밴쿠버로 이민을 왔다.


초등학교 6 학년과 4 학년에 밴쿠버에 정착한 두 조카는 훗날 대학을 졸업하고 좋은 직장에 취업했다.
그때 그 짧은 여름의 기억이, 인생을 바꾼 순간 이었던 셈이다.


잊지 못할 막내의 초등학교 졸업식의 순간


그리고 나는 지금도 잊지 못하는 장면이 있다. 막내아들의 7학년 초등학교 졸업식이다.

큰아이와 둘째딸의 졸업식에는 바쁜 일상 탓에 참석하지 못했지만, 막내아들의 졸업식만큼은 함께하고 싶었다.
졸업식 당일, 갑작스럽게 전달된 소식에 우리는 부랴부랴 준비를 마치고 학교로 달려갔다.나는 강당에서 졸업식이 열릴 줄 알았다. 하지만 초등학교에는 강당이 없었다.


조금 늦게 도착한 우리는 체육관(GYM) 뒤편에 조심스럽게 서서 졸업식을 지켜봤다.

"오늘의 주인공, 7학년 졸업반 학생들이 입장합니다."
아나운서의 목소리와 함께 문이 열렸다. 놀라운 광경이 펼쳐졌다.


7학년 학생들이 학교에서 가장 어린 킨더가든 아이들의 손을 하나씩 잡고 함께 입장하고 있었다.

순간, 피식 웃음이 나왔다.
프리미어 리그 축구 경기에서 선수들이 아이들의 손을 잡고 그라운드에 입장하는 모습이 겹쳐 보였다. 너무나 상큼하고 따뜻한 장면이었다.


7학년 학생들은 어린 동생들을 앞줄에 앉힌 후, 자신들은 체육관 뒤편으로 걸어갔다. 거기에는 마루보다 약 50cm 높게 설치된 긴 나무 보드가 놓여 있었다.


졸업생들은 그 위에 편하게 앉았다. 작지만 세심한 배려.학교 측은 마지막까지 7학년 학생들에게 특별함과 존중을 전하고 있었다.


나는 생각했다.'화려하지 않아도, 거창하지 않아도, 이렇게 가슴 따뜻한 감동을 줄 수 있구나.'

20년이 지난 지금도 그때 그 장면을 떠올리면 가슴 한켠이 뭉클해진다.


아이들의 인성을 진심으로 생각한다면, 캐나다로의 이민은 가능하면 '어릴 때' 결정하라고.아이들이 아직 세상의 질서를 배우기 전에,아이들이 아직 가슴속에 순수함을 간직하고 있을 때.그때 캐나다라는 사회 속에 뛰어들게 하라.


그러면 세상의 좋은 질서와 배려를 자연스럽게 몸에 새긴 아이로 자랄 것이다.

그것이, 부모가 아이에게 줄 수 있는 가장 큰 선물이다.


밴쿠버교차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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